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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저리 이야기

꿀벌 취재기 나갑니다 (장문 주의)

  • 꿀* *
  • 조회 : 2578
  • 등록일 : 2023-10-03
image01.jpg ( 56 kb)

안녕하세요 꿀벌 아재입니다. 꿀 같은 연휴가 끝나가서 아쉬운 밤입니다.


지난주까지 해서 저희 꿀벌팀 기사가 한국일보와 단비뉴스에 모두 나갔는데요. 기사가 모두 나간 김에, 지난 4개월 동안 취재하면서 느끼고 배운 점들을 글로 남겨보려 합니다. 혹여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씁니다


원래 지난달 22일 꿀벌팀 회식 이후 올리려 했는데, 쓰다보니 분량이 자꾸 늘어나 업로드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안쌤께 한우와 삼겹살 얻어먹고 헤벌쭉 한 꿀벌팀. 왼쪽부터 은송, 민정, 안쌤, 승연, 벼리)



취재는 3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서울에서 일하던 작년에도 꿀벌 실종 현상이 궁금하긴 했는데, 거리가 멀어 취재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세저리에는 주변에 양봉인들이 많아 해볼 만 하다 생각했습니다. (로컬 언론사의 장점?) 원래 꿀벌 실종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는 민정 기자와 팀을 이뤘습니다. 


우린 일단 무작정 양봉인들을 만나러 다녔습니다꿀벌이 진짜 실종되고 있는 건지, 양봉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5월 초까지 제천, 청주, 상주 등을 다니며 5분을 만났습니다.



(양봉장 다니다 운전 고수로 진화한 승연 기자)



(겁 없이 맨손으로 벌집을 만지는 민정 기자)



(민정 : 도대체 벌이 얼마나 많이 사라진 거죠?!)


(민정 기자는 정말 겁 없는 취재에 능통했습니다)



현장에서 본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텅 빈 벌통들이 양봉장 곳곳에 덩그러니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남은 벌이라도 살려보려고 애쓰던 양봉인들의 참담한 표정이 기억납니다.




(창고에 빈 벌통들이 가득하다)



(벌이 한 마리도 남지 않은 양봉장)


무엇보다 실종의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양봉인, 정부, 전문가 중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원인을 모르니 마땅한 해법도 없었습니다. 양봉인들은 그저 다음 겨울에도 꿀벌이 사라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문제는 취재 앵글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일단 현장에 가면 무언가 있겠지 생각하고 여기저기 다녔지만, 피해 사례 외 무엇을 더 취재할 수 있을지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꿀벌 실종 피해를 담은 현장 기사는 이미 다른 언론사에서 무수히 나온 상황이라, 이를 그대로 따라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취재의 방향을 못 잡은 채 어영부영 한 달 반을 보낸 것 같습니다.



...



서서히 취재의 동력이 떨어지던 찰나,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네오니코티노이드(네오닉)란 이름의 농약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산림청이 네오닉 농약을 산림에 무작위로 살포해왔는데, 그 농약이 꿀벌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산에 농약을 살포하는 산림청 헬기)



이게 뭐지 싶었습니다. 농약을 다룬 다른 기사를 더 찾아 읽었습니다. 유럽/미국은 꿀벌에 유해해서 네오닉 농약의 사용을 적극 제한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정부와 민간 모두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자재마트에 진열된 농약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꿀벌 실종 문제와 관련된 기존 보도 내용을 진작에 꼼꼼히 살폈다면 일찍이 알았을 정보였습니다이미 보도된 내용 중에 뭐 특별한 게 있겠어?’라고 섣불리 생각해버렸습니다. 기본을 지키지 않아, 소중한 한 달 반이란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뒤늦게 네오닉 농약은 한국에서도 꿀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가설을 따져보기 위해 국내 연구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국내에선 해당 농약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의견을 들을 만한 전문가 한 명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꿀벌 전문가로 알려진 한 교수를 만났지만, 그는 외려 국내에서 네오닉 농약의 영향은 적을 거라며 우리의 가설을 정면 반박했습니다.



...




우리가 가설을 잘못 정한 걸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의문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유럽, 미국은 오랜 연구를 통해 네오닉 농약이 꿀벌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후 사용 제한 조치까지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선 왜 정부 기관이나 전문가 모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지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위험하다 하니 한국도 위험할 거다는 식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네오닉 농약이 국내 꿀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무엇을 통해 보여줄 수 있을지가 숙제로 남았습니다. 일단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


  


그즈음 팀에 16기 막내인 벼리 기자가 합류했습니다. 꼼꼼한 J형의 벼리 기자는 두 연장자들에게 ‘자료 정리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를 알려주었습니다



   

(경북 안동의 한 대학교에서 인터뷰이를 기다리는 벼리, 민정)



벼리 기자는 우선 우리가 수집한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목록화 해주었습니다. 안 쓰던 회의록도 쓰기 시작했습니다





(따로 정리 안 하고 그냥 카페에 올려두기만 한 자료들)





(정리된 데이터. 카테고리별로 분류해두었더니 나중에 찾기가 쉬웠습니다)




(새로 도입된? 꿀벌팀 회의록)



당시 저는 취재를 하며 어떤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제 때 찾지 못해이미 확보한 자료를 찾는 데도 한 세월을 보내곤 했습니다. 취재가 길어질수록 미리 정리를 잘 해두는 것이 결국 나중에는 시간을 단축하는 길임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저처럼 극심한 P형은 정말 노력해야 하더군요. 회의한 내용이나 수집한 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쌓아두기만 하면 나중에 정말 답이 없어요...)



취재는 계속 진행됐습니다. 한국에서 농약에 대한 정보는 굉장히 폐쇄적이었습니다. 애초 농약관리법에 농약에 대한 정보는 농약회사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개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더군요.



농촌진흥청은 이 조항을 근거로 저희가 했던 정보공개청구를 거의 다 거절했습니다. 때문에 국내 농약 제품별 판매량 같은 기본적인 정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뭔가 뾰족한 수가 필요했습니다. 해외 논문에서 단서가 될 만한 사실을 하나 찾았습니다. 네오닉 농약에는 물에 잘 녹고 환경에 오래 잔류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외에선 네오닉 농약이 강, 하천, 지하수 등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이미 제기된 바 있습니다. 마침 영국과 미국에서는 강과 호수를 검사한 결과 네오닉 농약이 높은 농도로 검출된 사례가 있었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지자체에서 지표수 수질 검사를 했더니, 

네오닉 농약이 이렇게 나왔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참고하여 저희 팀은 가설을 다시 세웠습니다.  



'한국에도 네오닉 농약이 많이 사용된다던데그렇다면 외국과 마찬가지로 강과 지하수에 농약 성분이 잔류되어 있지 않을까?’



국내 강과 지하수에서 네오닉 농약이 얼마나 잔류하는지 그 실태를 파악하면, 간접적으로 네오닉 농약이 국내 생태계에 얼마나 많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하지만 우리 팀에는 전국의 강물을 퍼서 그 안에 함유된 농약 성분을 검사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해당 연구를 진행한 기관이 있는지 구글링 했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마침 국립환경과학원이란 기관에서 작년부터 해당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4대강과 지하수 모두 검사를 했습니다


해당 연구의 목적 및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NTIS라는 R&D 연구용역 중개사이트에서 우연히 찾았습니다.




(NTIS 사이트)



(NTIS 등 국내 정부기관이 운영하는 다양한 사이트를 미리 정리해두면 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무작정 찾다 보면 정말 한 세월이더군요. 여기 사이트에서 다운 가능한 PDF파일 중간 즈음에, 국가 통계, 연구 용역 정보 등 취재에 도움이 될 만한 사이트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https://seoulpa.kr/bbs/board.php?bo_table=npo_aca&wr_id=4310




...




해당 연구의 결과보고서를 얻기 위해 국립환경과학원에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대부분 비공개 처리가 됐습니다. 수질 연구 보고서에 도대체 무슨 개인정보가 담겨있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저희가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과학원 관계자와 통화를 해보니 수질 검사를 하기는 했으나, 그 결과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굳이 자료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의심쩍었습니다.






(개인정보를 이유로 공개를 거절한 과학원)




저희 팀은 자료 입수를 위해 의원실에 협조를 구하기로 했습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윤미향 의원이 네오닉 농약의 남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의원실에 찾아가 의원실 관계자에게 취재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이러저러한 자료를 얻고 싶은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운 좋게도 이 문제에 원래 관심이 있던 의원실 관계자는 자료들을 최대한 열심히 확보해주었습니다. 기관들이 끝까지 공개하지 않은 자료도 있었으나, 그래도 많은 자료를 빠른 시일 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들 중 일부)



의원실에서 전달 받은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과학원이 지난해 모니터링을 수행한 결과, 국내 강과 지하수에서 네오닉 농약이 매우 넓은 지역에서 검출됐고, 그 농도도 높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팀은 이 결과가 네오닉 농약이 꿀벌을 포함하여 국내 생태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판단했습니다. 저희가 자문을 구한 국내외 전문가들도 우리의 판단을 뒷받침해주었습니다. 



...




공모전 마감일이 3주 가량 남은 무렵,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취재를 어느 정도 끝내고 기사는 마감일 7~10일 전후로 해서 쓰기 시작하려 했는데, 안쌤이 일단 기사부터 빨리 쓰라고 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게 도움이 됐습니다. 기사를 쓰면서 어느 부분의 취재가 미진하고, 자료 정리가 부실한지 일찍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으니, 부진한 부분을 채울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한편 이 과정에서 배운 점은 구성안의 중요성입니다. 아쉽게도 저희 팀은 기사 구성안을 꼼꼼하게 세우지 않은 채 일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팀장을 맡은 저의 무계획적인 성격 탓이 컸습니다. 늦게나마 반성합니다. (올해 목표 : J형 기자 되기)



물론 취재를 하다 보면 내용이나 방향이 일부 달라질 수 있지만, 팀원들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효율적인 일 진행을 위해서는 일종의 기준점이 분명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해야할 일을 안하면 결국 훗날 반드시 문제로 돌아오는 것 같더군요. 취재가 미진했던 부분들기사에 들어갈 내용과 구성 등을 두고 팀원들 간에 의견 차이가 생겼습니다. 마감일이 다가워지자 과연 기사를 완성할 수 있을지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 기사를 쓰기 시작할 즈음 은송 기자가 팀에 합류했습니다. 단비뉴스 '선배'인 은송 기자는 다른 팀원들이 오랜 취재에 다소 지친 시기 팀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습니다.


그는 기존에 진행해온 취재 내용을 빠르게 따라잡은 후, 추가 취재가 필요한 부분을 잘 메꾸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4명 모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의기투합 할 수 있었습니다.



...




마감일을 하루 앞둔 퇴고 단계에서는 안쌤의 팁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안쌤은 4명이 모두 일종의 데스킹 역할을 맡는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쓴 기사의 문장과 내용을 하나씩 뜯어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수정본을 한 사람이 종합해 완성하라 하셨습니다


팁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문장과 문단 구성이 한결 매끄러워졌습니다. 표현도 더 정밀해졌습니다. 그렇게 기사를 매듭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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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많이 길어졌네요. 취재를 하며, 취재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해 아쉽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현장 취재는 어느 정도로 해야 충분한지, 이 자료는 어느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지, 데이터 정리는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습니다.


당연히 기사마다 취재 방법은 모두 다를 테니, 그 방법을 무슨 교과서처럼 정리할 수는 없으을 겁니다. 다만 각자의 취재 경험을 이렇게 공유하다 보면, 그 시행착오의 기록들이 모여 훗날 다른 취재의 어느 순간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만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맛났던 갓 나온 꿀... 이런 게 취재의 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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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아이콘이미지  댓글수 6
naver -   2023-10-03 22:53:31
이렇게 풍성하고 유익한 취재기라니..! 얼마나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 작성에 집중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꿀벌팀 모두 고생 많았어요~!
+ 세저리 이야기를 위해 며칠동안 작성했다고 들었는데 술술 읽혔습니다^_^
naver -   2023-10-04 00:16:39
눈물없이 읽을 수 없는 꿀벌 취재기.. (룰루랄라 ♬ 소풍가듯 취재가던 때가 있었는데!!!)

꼼꼼하게 써준 덕분에 저두 초심을 잃을때마다 들어와서 각성할 수 있겠어요 (북마크)
^____^ 감사합니다..
naver -   2023-10-05 15:31:23
정말 꿀같은 취재팁들이 가득하군요!! 허심탄회하게 적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꿀벌팀 수고 많았어요~~
naver -   2023-10-06 01:57:50
말벌.. 아 아니 꿀벌 아저씨... 당신은 대체..
기사도 잘 쓰시는데 자아 성찰도 정말 잘 하시네요. 이렇게 또 배웁니다.
naver -   2023-10-11 02:22:11
그찐..같던 유쁘팀골골이가 맞나? 가슴이 웅장해진다..
naver -   2023-10-13 20:39:40
와 진짜 너무 멋있다 한수 배우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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